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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구독하는 훌륭한 마음의 멘토인 김규항님의 포스팅 http://gyuhang.net/1974를 읽고 든 생각을 정리해 본 글입니다. 


  사실 나는 교육에 열성인 부모님을 가지지 못했음에 아쉬워하는 생각을 가끔한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소스라치며 놀라곤 한다. 어느 순간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나에게 "더 독해져라, 더 열심히 해서 성공해라" 등의 말들로 나를 대한민국의 계급 계단을 한 계단 더 오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서울의 4년제, 진보를 표방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1년이 넘어간다. 철없는 청개구리의 자존심일 뿐이었던가, 실제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상들을 반복했던 나의 삶은 점점 무채색으로 희석되어가고 있다. 그럴 때마다 김규항님의 글은 나에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된다. 하지만, 그도 그 뿐. 그 잠깐의 즐거움이 사라지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건 필요충분조건의 무거운 짐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다시 배우길 바란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의 사랑이다. 나름 좋은 방송밥을 먹고 싶어하는 나는, 자기소개서에 줄곧 이런 개똥철학을 적곤 한다. 하지만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도 나 자신에게 '너, 이러면 떨어질텐데.. 차라리 그럴 시간에 스펙을 더 올려. 스펙도 안 되는 게 지원은 왜 하니. 차라리 돈 좀 들여서 다른 사람처럼 멋지게 포장해보던가. 아님 다른 거 알아보고.'등의 대사로 압박을 주곤한다. 

  이런 사이클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어느 새 주객이 전도된 인생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나를 발견하고, 이 시대, 이 순간의 한국에 살게 된 나의 운명을 한탄하게 된다. 아이들이 한쪽에서는 죽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의 피해자로 전락해야만하는 이 한국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든다. 표류하는 돛단배에서 폭우와 싸우는 기분과 끝없는 블랙홀 기저로 떨어지는 기분을 테크노 버전으로 리믹스한 아햏햏한 기분이랄까. 

  "하고자 하는 말"을 "하고자 하는 직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은 "하고자 하는 말"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 것 같고, 일부분은 "하고자 하는 말"을 "하고자 하는 직무"가 아닌 직무로 표현하게 되고, "하고자 하는 직무"를 하기 위해 "하고자 하는 말"을 포기해야 하며, "하고자 하는 직무"를 좇는데 너무 에너지를 쏟다보니 "하고자 하는 말"의 존재 자체를 잊게 된다. 
  "하고자 하는 말"과 "하고자 하는 직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꿈과 이상 정도가 될 것이다. 꿈과 이상이 권력에 귀속되어버렸다. 권력이 있으면 꿈도, 이상도, 그 무엇도 가능한 한국사회. 부모들은 이런 현실에서 자신들의 꿈을 자녀에게 투영시키는 것에만 몰두할 뿐, 이상은 어느새 대장의 한 덩어리와 함께 배설해 버려 그 흔적도, 의미도, 존재도 잃어버린 것이다. 

  얼마 전에 본 한 영화에서 "Her mother and I didn't succeed in preparing her for the real world, I'm afraid."라는 대사가 있었다. 대사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Her mother and I succeed in preparing the fair world for my children. I'm proud of that." 우리의 부모들은 잘못된 선택을 이미 1번 했다. 세상에 자식을 준비시키는 것이 아닌, 자식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서가 없고 횡설수설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만, 계속 꾸준히 쓰다보면 훌륭한 글이 제 손가락에서 튀어나올 날도 분명 올 겁니다.


덧1) 이런 나라도 있네요. 이렇게 하자~는 아닙니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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